- 폐업한 할머니 국숫집을 물려받았다. 첫 손님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온, 꼬리 아홉 달린 여우였다.— 줄줄이
- 여우는 카운터 앞에 단정히 앉더니 말했다. "소원을 빌러 온 게 아니다. 갚으러 왔다."— 국밥러
- "갚다니요, 뭘요?" "네 할멈에게 소원 하나를 빚졌다. 사십 년 됐다. 이자까지 쳐서 아홉 개다."— 익명
- 여우가 꼬리 아홉 개를 촤르륵 펼쳤다. 자세히 보니 여덟 개는 윤기가 흐르는데, 한 개만 유독 낡고 꼬질꼬질했다.— 야근중
- "사십 년 전 겨울, 덫에 걸려 죽어가던 나를 네 할멈이 업고 와 국수 국물을 떠먹였다. 그때 나는 꼬리가 여덟이었지."— 여우주의
- "아홉 번째 꼬리는 할멈이 준 거다. '너 하나 살리는 게 내 소원'이라더군. 남의 소원으로 자란 꼬리는, 갚기 전엔 윤이 안 나."— 익명
- 나는 얼떨결에 말했다. "그럼... 할머니한테 갚으셔야죠. 저 말고." 여우의 귀가 축 처졌다. "늦었다. 석 달 전에."— 빵순이
- 할머니 장례식 석 달 뒤였다. 여우는 상속인인 나에게 소원 아홉 개를 갚겠다며 종이와 붓을 밀어 놓았다. "적어라. 뭐든 된다."— 국밥러
- 로또, 건물, 세계일주... 손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첫 줄에 적힌 건 이거였다. "할머니 국수 맛 아세요?"— 익명
- 여우가 처음으로 웃었다. "안다. 사십 년을 옆 산에서 냄새만 맡았다. 멸치 육수에 파, 그리고 비밀 하나."— 여우주의
- "그럼 첫 번째 소원. 그 비밀, 저한테 가르쳐 주세요. 저 이 가게 다시 열 거예요." 여우의 낡은 꼬리가 살짝 반짝였다.— 야근중
- 그날부터 여우는 주방에 섰다. 소원은 하루에 하나씩만 갚겠다며, 국수 삶는 법을 아홉 밤에 나눠서 가르쳤다. 치사하게.— 빵순이
- 아홉 번째 밤, 마지막 비밀을 배웠다. 육수가 아니라 손님 얼굴을 보고 간을 맞추는 것. "할멈은 그걸 '안부'라고 불렀다."— 익명
- 재개업 날, 가게 앞에 줄이 생겼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의 진상을 이제 안다. 이 집 국수는 소원을 이뤄주는 게 아니라, 잊게 해준다.— 국밥러
- 주방엔 꼬리 아홉 다 반짝이는 직원이 하나 있다. 명찰엔 '이모'. 손님들은 아무도 모른다. 이모가 파를 썰 때마다 꼬리로 문을 닫는 걸.— 여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