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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폐업한 할머니 국숫집을 물려받았다. 첫 손님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온, 꼬리 아홉 달린 여우였다.— 줄줄이
  2. 여우는 카운터 앞에 단정히 앉더니 말했다. "소원을 빌러 온 게 아니다. 갚으러 왔다."— 국밥러
  3. "갚다니요, 뭘요?" "네 할멈에게 소원 하나를 빚졌다. 사십 년 됐다. 이자까지 쳐서 아홉 개다."— 익명
  4. 여우가 꼬리 아홉 개를 촤르륵 펼쳤다. 자세히 보니 여덟 개는 윤기가 흐르는데, 한 개만 유독 낡고 꼬질꼬질했다.— 야근중
  5. "사십 년 전 겨울, 덫에 걸려 죽어가던 나를 네 할멈이 업고 와 국수 국물을 떠먹였다. 그때 나는 꼬리가 여덟이었지."— 여우주의
  6. "아홉 번째 꼬리는 할멈이 준 거다. '너 하나 살리는 게 내 소원'이라더군. 남의 소원으로 자란 꼬리는, 갚기 전엔 윤이 안 나."— 익명
  7. 나는 얼떨결에 말했다. "그럼... 할머니한테 갚으셔야죠. 저 말고." 여우의 귀가 축 처졌다. "늦었다. 석 달 전에."— 빵순이
  8. 할머니 장례식 석 달 뒤였다. 여우는 상속인인 나에게 소원 아홉 개를 갚겠다며 종이와 붓을 밀어 놓았다. "적어라. 뭐든 된다."— 국밥러
  9. 로또, 건물, 세계일주... 손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첫 줄에 적힌 건 이거였다. "할머니 국수 맛 아세요?"— 익명
  10. 여우가 처음으로 웃었다. "안다. 사십 년을 옆 산에서 냄새만 맡았다. 멸치 육수에 파, 그리고 비밀 하나."— 여우주의
  11. "그럼 첫 번째 소원. 그 비밀, 저한테 가르쳐 주세요. 저 이 가게 다시 열 거예요." 여우의 낡은 꼬리가 살짝 반짝였다.— 야근중
  12. 그날부터 여우는 주방에 섰다. 소원은 하루에 하나씩만 갚겠다며, 국수 삶는 법을 아홉 밤에 나눠서 가르쳤다. 치사하게.— 빵순이
  13. 아홉 번째 밤, 마지막 비밀을 배웠다. 육수가 아니라 손님 얼굴을 보고 간을 맞추는 것. "할멈은 그걸 '안부'라고 불렀다."— 익명
  14. 재개업 날, 가게 앞에 줄이 생겼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의 진상을 이제 안다. 이 집 국수는 소원을 이뤄주는 게 아니라, 잊게 해준다.— 국밥러
  15. 주방엔 꼬리 아홉 다 반짝이는 직원이 하나 있다. 명찰엔 '이모'. 손님들은 아무도 모른다. 이모가 파를 썰 때마다 꼬리로 문을 닫는 걸.— 여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