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가 남긴 낡은 수첩 첫 장에, 내 이름과 '오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줄줄이
-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 이 수첩은 오늘 처음 펼친 것이었다.
손끝이 서늘해졌다.— 몽실
- 떨리는 손으로 다음 장을 넘기자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할머니의 서툰 글씨로 '늦으면 안 된다'는 한 문장이 몇 번이나 덧그은 듯 진하게 눌려 있었다.— 익명
- 무엇을 늦으면 안된다는 걸까? 다른 페이지를 살펴보았지만 그 메모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익명
- 나는 홀린 듯 주소를 찍고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의 작은 우체국. 이미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줄줄이
-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자 늙은 우체국장이 나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눈매, 혹시 김순자 씨 손주요?"— 줄줄이
- 그는 창구 뒤 서랍에서 먼지 쌓인 소포 하나를 꺼냈다. "10년째 안 찾아가면 폐기하려 했는데. 오늘이 딱 그 마지막 날이오."— 줄줄이
-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할머니가 '늦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눌러 쓴 이유가 이거였구나.— 줄줄이
- 소포를 열자 낡은 카세트테이프와 재생기, 그리고 짧은 쪽지. "혼자 듣지 말고, 네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랑 들어라."— 줄줄이
- 나는 급히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년간 사소한 오해로 연락을 끊고 지낸, 하나뿐인 동생에게.— 줄줄이
- 한참 신호가 가고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받았다. "…여보세요?" 나는 겨우 말했다. "나야. 할머니가… 우릴 부르셨어."— 줄줄이
- 우리는 그날 밤 할머니의 옛 집에 마주 앉았다. 10년 만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줄줄이
- 테이프에선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 둘이 같이 이걸 듣고 있다면, 이 할미 소원은 다 이룬 거다."— 줄줄이
- 우리는 마주 보고 울다 웃었다. 할머니는 유산도 비밀도 아닌, 끊어진 우리를 다시 이어주려 이 긴 길을 깔아둔 거였다.— 줄줄이
- 수첩의 백지들은 이제 우리 몫이었다. 첫 장에 나는 동생의 이름과 '오늘 날짜'를 적었다. 이야기는 줄줄이 이어질 테니까.— 줄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