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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머니가 남긴 낡은 수첩 첫 장에, 내 이름과 '오늘 날짜'가 적혀 있었다.줄줄이
  2.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 이 수첩은 오늘 처음 펼친 것이었다. 손끝이 서늘해졌다.몽실
  3. 떨리는 손으로 다음 장을 넘기자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할머니의 서툰 글씨로 '늦으면 안 된다'는 한 문장이 몇 번이나 덧그은 듯 진하게 눌려 있었다.익명
  4. 무엇을 늦으면 안된다는 걸까? 다른 페이지를 살펴보았지만 그 메모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익명
  5. 나는 홀린 듯 주소를 찍고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의 작은 우체국. 이미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줄줄이
  6.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자 늙은 우체국장이 나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눈매, 혹시 김순자 씨 손주요?"줄줄이
  7. 그는 창구 뒤 서랍에서 먼지 쌓인 소포 하나를 꺼냈다. "10년째 안 찾아가면 폐기하려 했는데. 오늘이 딱 그 마지막 날이오."줄줄이
  8.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할머니가 '늦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눌러 쓴 이유가 이거였구나.줄줄이
  9. 소포를 열자 낡은 카세트테이프와 재생기, 그리고 짧은 쪽지. "혼자 듣지 말고, 네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랑 들어라."줄줄이
  10. 나는 급히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년간 사소한 오해로 연락을 끊고 지낸, 하나뿐인 동생에게.줄줄이
  11. 한참 신호가 가고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받았다. "…여보세요?" 나는 겨우 말했다. "나야. 할머니가… 우릴 부르셨어."줄줄이
  12. 우리는 그날 밤 할머니의 옛 집에 마주 앉았다. 10년 만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줄줄이
  13. 테이프에선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 둘이 같이 이걸 듣고 있다면, 이 할미 소원은 다 이룬 거다."줄줄이
  14. 우리는 마주 보고 울다 웃었다. 할머니는 유산도 비밀도 아닌, 끊어진 우리를 다시 이어주려 이 긴 길을 깔아둔 거였다.줄줄이
  15. 수첩의 백지들은 이제 우리 몫이었다. 첫 장에 나는 동생의 이름과 '오늘 날짜'를 적었다. 이야기는 줄줄이 이어질 테니까.줄줄이